100년이 넘는 자신의 삶에 사랑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읽는 내내 김형석 철학자의 삶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3살 형이었던 윤동주 시인과 중학교 한 반에서 함께 공부했다니
100년의 세월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건들을 품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해, 건강하게 태어나 무리하는 사람보다
해로운 것을 멀리하면서 더 오래 살아남아
긴 인생을 풍부하게 살아남았으니, 자부심도 있고 배울 점도 당연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건강이 좋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동안,
가족과 부모와 스승의 사랑을 강인하게 배울 수 있었다며
자신이 겪은 고생을 강인한 고생이라고 표현하며 감사를 표하는
노학자의 모습이 뭉클했다.
100세 철학자께서 인생은 경쟁이지만 절대로 이기적인 경쟁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자기 자신도 불행해지고 사회악을 남기고, 선의의 경쟁 안에서
사회가 성장할 기회도 상실하게 하는 잘못된 선택을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좀 양보하고, 내가 좀 더 뒤에 서더라고, 앞선 사람을 밀어줄 줄 아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사랑을 품고 있다면 그런 가치관, 인간관계, 배려를
충분히 배경으로 둘 수 있다며 사랑 예찬을 하셨다.
나이 들어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과 성장을 위해
누가 더 값진 사랑을 하는가를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한 시대를 함께 사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죽더라도 거짓과는 짝하지 말자." 던 말씀처럼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살려는 성실의 길 또한 당부하셨다.
성실하다는 것은 항상 애써 선과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이기에
보다 높고 귀한 것을 찾아 성장하려고 하므로 늘 겸손하다.
빈 수레가 요란한 사람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아무리 대단한 큰일을 했어도 그 일이 크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아직 해야 할 더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도 성실하다.
성실은 사람을 참되게 만들며 서로를 위해주는 사랑하는 사회를 육성한다.
성실성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무성의와 게으름을 감싸보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져
허무와 회의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삶의 성공을 믿고 성공의 가능성을 신뢰하면
회의감이나 허무함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낙오자들이 자기변명의 수단으로 삼는 허무주의를 특히 경계하라는
따끔한 충고에 정신이 번쩍였다.
내가 먼저 준 다음에 상대로부터 받는 먼저 베풀 줄 아는
사랑할 줄 아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인생 지침서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