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급 쌀쌀해지면서 곧 2024년도 저물어가겠구나,
완연한 중년으로 접어들겠구나는 생각에 괜스레 서글퍼졌다.
기운을 내고 마음만은 청년으로 돌아가기 위한
나만의 비법 중 하나가 사춘기 때 열렬히 사랑했던
헤르만 헤세와 윤동주를 만나는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꼭 읽어야 할 이 시애의 고전인
윤동주 시집을 청소년기에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물아홉 해방되던 해에 가버려 더 가슴 저미게
우리에게 영원한 청년으로 각인된 시인의
출중한 외모에 반해 시집을 집었다가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기며 얼마나 먹먹했었는지,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을 읽으면 꿈 많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지만 윤동주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 차 있었고,
친구들이 찾으면 빙그레 웃으며 반가이 마주 앉아주었다는
수줍은 청년을 통해 내향인의 롤모델을 삼았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시인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이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쓴 서문을
보니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였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극강의 I 성향 사람으로서 수줍었던 내향적이지만,
그 누구보다 굳건했던 한 청년의 외침에 공감이 되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서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기까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지나치게 겸허 온순했지만 시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던
그 굳건한 심지를 본받고 싶다.
서시와 길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고민되는 이 시점에서
길은 더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1.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