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편지가 없다면 살 수 없을 거라고 고백했을 만큼 편지 쓰는 걸 좋아해서
4000여 통이나 되는 편지가 남아 있다고 한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랑 주고받았던 편지를 통해
반 고흐의 고뇌와 예술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듯,
버지니아 울프가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통해서
그녀의 '자유'를 갈망했던 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사춘기 때 주머니에 돌을 한가득 넣고 강으로 걸어간 여성 작가의 삶도,
작품도 너무 난해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녀의 편지를 접하니 이렇게 섬세한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우울증, 정신 질환으로 인한 자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악플러에 대항해서 싸우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하고,
평화를 위해 시위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며
자유롭고 멋진 모습으로 늙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남긴 많은 편지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 문학 전문 문학평론가가 엄선한
96통의 편지가 연대순으로 그녀가 생전에 갈망했던
'자유, 상상력, 평화'라는 키워드로 3부로 구성되어 있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울프의 연인으로 알려진 비타 색빌웨스트와 주고받은 서신은 이미 알려진 바 있지만,
언니 바네사 벨, 남편 레너드 울프, 주변 예술가들과 독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이 책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라며
여성의 물질적, 정신적 자립을 강조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을 넘어 여성성과 남성성이 융합된 양성적인 마음을 지니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연인들과 남편과의 관계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뭔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잘 구축된 것 같다.
지금도 파격적인 자유로운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고,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비평과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었을텐데,
그 모든 다양한 의견들이 쌓이도록 놔두고 있다며
모두가 잠잠할 때 자신의 구멍에서 기어 나와 그 의견들을 종합할 거라고 한 걸 보면
정말 굳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너무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해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녀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해 내린 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전체주의와 가부장제의 뗄 수 없는 관련성을 간파하고
파시즘의 기원이 가부장제적인 가족 안에 있다고 생각한
여성 작가가 그 당시에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었을까?
히틀러가 자신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쓸 만한 아이디어들을
지니고 있다는 보낸 편지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자신을 괴롭혔던 질병과 싸워왔지만 더 이상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자신의 남편이 항상 놀라울 정도로 잘해줬다고
그 누구도 자신을 위해 더 잘 해줄 수 없었을 거라며
공포가 시작된 몇 주 전까지는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걸 남편에게 확신시켜주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했고,
자신의 광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낭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광기가 자신의 자유를 앗아가길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단순히 유전적인 신경 쇠약, 작가의 예민함에서 기인한 우울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주의와 전쟁의 위협이 가부장제에서 기원한다며
고학력 남성의 아들들이 비싼 비용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는 공안
고학력 남성들의 딸들과 누이들은 교육과 전문직, 정치 참여에서 배제되어 온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며 전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염원했지만
그녀는 아웃사이더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그 아웃사이더 정신이
세상을 그녀가 살던 시절보다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으로,
주체적인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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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