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문학의 절반은 셰익스피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문학의 거장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너무나 유명하다.
각종 연극, 드라마, 영화는 물론 오마주한 작품도 너무 많아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너무나 친숙한데 정작 작품을 정독한 적은 별로 없다.
"가장 유명한 고전은 모두 알고 있어서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걸 안타깝게 여긴 북 큐레이터인 저자가
셰익스피어 원문 문장들을 엄선해서 인문학적 해석을 곁들인 책이다.
저자의 <문장의 기억 시리즈> 1편 버지니아 울프, 2편 안데르센을
음미하면서 유익하게 봤던지라 3편 역시 기대만큼 만족하며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장이라서 그런지 다른 편보다
개인적으로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해 온 게 더 후회가 많이 되었다.
영어를 좀 잘 하면 셰익스피어의 운율 뭐 이런 게 더 잘 느껴져
감동이 더 깊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십이야>는 크리스마스부터 12일 동안 축제를 벌이는 영국의 풍습에서 따온 제목이다.
크리스마스로부터 12번째 밤은 1월 6일로, 구세주가 나타난 것을 축하하는
축제 기간의 마지막 날로 유럽에서는 이날 하루를
악의 없는 장난과 농담으로 아주 즐겁게 보낸다.
그래서 작품 속에 유쾌한 농담이 많고
고정 관념에 대한 관객의 의문을 고조시킨 작품이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변장과 여성 위장극이 너무 뻔하고 유치해보여도
당시에는 남성 배우가 여성 역할을 맡는 시대였고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주 강했으니까 더 유쾌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는 <헨리 4세>에 등장했던 성숙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팔스타프와 그의 부하 피스톨, 님이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했던 요정 여왕과
장난꾸러기 요괴 등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요청에 따라
기존의 인물들을 오마주했기 때문이란다. 사랑에 빠진 팔스타프가 등장하는 연극을 하나
더 만들어 달라는 여왕의 말에 2주만에 작품을 썼다는 말도 전해지는 작품인데,
인상적인 대사나 문장은 많지 않지만 왕족이 아닌 서민의 삶을 그려낸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중산층 시민 중에서 상대적으로 계급이 높은 팔스타프와 하층 계급인 피스톨, 님이
대립하면서 희극적 효과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인물들이 재창작된 만큼, 친숙한 이름을 찾아보면서
읽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사랑과 우정, 배신과 용서 이야기가 흔한 것 같지만
수백 년이 흐린 지금 읽어도 감탄스럽다는 면에서 <베로나의 두 신사>는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갖는 천재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집필한 작품이라 그 어느 작품보다 풋풋한 참신함이
매력적이고,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연 초기작으로 이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16세기 후반 가부장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던 시대여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반항적인 여성 캐서린을 순종적으로 길들인다는 점에서
여성 차별적이고 여성을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당시의 여성 차별적 시선과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고,
페트루치오가 아내를 길들이기 위해 하는 일이 너무나 비상식적이어서
아내를 길들인다는 의도 자체를 비꾸며 블랙 코미디로 해석하기도 한다니,
시대가 원하는 인물상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우습기도 하다.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 시 형식인 칸초네를 토마스 와이엇이 잉글랜드로 들여온 후
소네트는 14행시 5음도 정형시로 자리잡으며 잉글랜드 모든 작가가 소네트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연인을 찬미하는 내용이라 시간이 자나면서
식상한 표현들이 다수를 차지해 점차 인기가 식어갔는데
셰익스피어가 참신한 내용을 담으면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원래 소네트와 다른 내용을 담기 위해 자신만의 소네트 형식을 만들어
현재는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로 따로 분류하고 있단다.
영문학의 정수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명대사와 줄거리, 시대 배경과 해석을 비롯하여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까지 부록으로 만날 수 있어
압축된 문학의 정수를 소화해내는 기분이 들어 너무나 든든하고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