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지키는 세계
세계 곳곳에서 벌집 붕괴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생물다양성이 급감함에 둔감하던 인류가 벌이 멸종위기종이 되자
그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수분 매개자의 멸종으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를 막기 위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대응을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기는 하지만,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벌 지키기 프로젝트를 통해 곤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중,
리버깅(rebugging)에 대한 책을 발견하게 되어 기뻤다.
리버깅
리버깅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벌레의 개체 수와 다양성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자연을 야생상태로 되돌릴 수 있고(리와일딩),
리버깅은 단순히 어떤 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이다.
리버깅은 누구나,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벌레 먹은 채소, 흠 있는 과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소비자들이 동일한 길이, 색깔, 형태를 가진 완벽한 상품을 기대하면
농부들은 농약을 뿌리고 단일 품종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1970년 이후로 전체 곤충의 개체 수가 매년 10%씩 감소되고 있는 이 추세라면
2050년에는 전체 곤충의 80%가 사라질 정도로 심각하다.
생물다양성 감소가 심각한 수준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소규모 자급적 농업 대신 기업적 농업이 산업을 장악하고 산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면서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니 정말 참담하였다.
인공조명은 벌레들의 활동과 움직임 조절하는 빛-어둠 생체리듬을 교란하여
먹이를 구하고 번식하고 이동을 제한한다.
벌레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과 혐오로 변해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벌레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벌레를 귀엽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벌레의 중요성을 알고 나랑 너무나 다르게 생긴 모습 때문에
혐오스러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형성할 수 있다.
저자의 가족들이 캐나다의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어린 아들의 발에 붙은 거머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보자마자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멋진 추억을 남기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곤충에 대한 재미나는 정보들도 재미있었다.
최근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원들이 사막개미가 먹을 때 사용하는 알고리즘이
인터넷에서 데이터 트래픽을 조절하는 데에 쓰이는 전송 프로토콜과 흡사함을 발견했다.
아무리 뒤죽박죽된 어수선한 환경에 있더라도 기억력, 의사소통, 물리적 도구를 이용해
길을 찾는 시스템을 인간의 도구 개발에 유용하게 사용할 예정이라고 하니 놀랍다.
5mm도 안 되는 돈거미는 필요한 높이에 도달하기 위해
근육의 힘이나 거미줄에 가해지는 공기저항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전기력을 일으켜 높이뛰기를 한다.
대기 중의 전기를 활용한 벌루닝으로 서식지 내 이동은 물론이고
대륙을 가로지를 만큼 멀리 가기도 하다니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
1초에 85번 날개를 움직이는 박각시나방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설렘을 맛보고 싶다면,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정원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 둔다.
정원 그 자체로 야생동물을 위한 훌륭한 쉼터가 되어 다양한 벌레들이 모여들게 된다.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 소비자로서 행동해야 현재의 식품 시장을 지배하는 법은 물론,
벌레 친화적인 식품 생산을 촉진하는 장려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벌레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돕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는 유익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