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민낯

by biogene 2024. 1. 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실연을 당하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매혹되어

그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인 데이비드가 발견해 직접 이름 붙인 물고기 수가

당시 인류에 알려진 어류는 5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그는 저명한 생물분류학자였다.

온 정성을 쏟아 수집한 수많은 표본들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모두 박살이 났을 때

그의 과학자적 집념은 빛을 발하였다.

유리 단지에 보관해 둔 물고기 1000여 종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바늘을 들어 물고기의 몸에 직접 이름표를 꿰며 절망에서 벗어났다.

무모할 정도로 보이는 초인적인 그의 집념이

자신에게 역경의 시간을 헤치고 끝내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줄 교훈이 될 것 같아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했다가, 그의 추악한 민낯을 보게 되고 깜짝 놀라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민낯

인류에게 알려진 물고기 12~13천 종 가운데,

5분의 1을 데이비드와 그의 제자들이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은 데이비드가 그의 우생학 캠페인이 표적으로 삼고 있던

아무 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던 이민자들과 빈민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우생학자였던 데이비드는 당연히 의도적으로

그들의 노동과 지혜, 발견을 과학적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존경받아온 과학자 데이비드가 열광적인 우생학자였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존경받아 마땅할 삶과 거리가 먼 완전한 범죄자였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인을 은폐한 살인자였다.

데이비드가 그와 반대편에 있었던 스탠퍼드 설립자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하고,

은폐했다는 증거의 조각조각이 맞추어지는 과정에 소름이 돋았다.

독살에 의한 죽음을 과로와 과식으로 인해 발생한 심부전으로 둔갑시키고도,

스탠퍼드대학교 총장으로, 사후에는 도서관에 브론즈 흉상과 심리학부 건물 이름과

화려한 초상화들로 계속해서 군림하다니 그 뻔뻔함과 수완이 놀라웠다.

 

생물학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차지한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 촉진을 위한 훌륭한 교육안을 내어 국제평화상도 받고

승승장구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평화주의자가 된 것은 전쟁이 국가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키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 번식을 이어나가게 되니,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평화주의라는 인기 없는 대의가 필요했다.

프랜시스 골턴이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으로

백치들을 몰살하는 우생학을 탄생시켰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무시하고 넘겼었다.

사변적 SF 소설의 영역으로 남을 법한 우생학이

데이비드의 지극한 열성과 과학적 권위 덕분에 퍼져나가게 되었고,

미국은 우생학 열병에 걸리게 되었다.

 

데이비드에 의해 전파된 우생학의 대의를 위해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가 주장되었고,

하버드부터 스탠퍼드, 예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프린스턴까지

전국의 모든 명망 있는 대학들에서 우생학을 가르쳤다.

우생학 잡지, 우생학 화장품, 우생학 경진 대회는 미국인들이 숨기고 싶은 흑역사 중의 하나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씩 우생학이 계속 시행되고 있음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2006부터 201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서 150명에 가까운 여성에게

동의도 얻지 않고 본인들도 모르게 불법적으로 불임화 수술이 자행되었고,

잡범들에게 불임화를 받는 대가로 수감 형량 감량을 제안한 판사도 있었다.

가난과 고통과 범죄가 혈통의 문제이며 불임화를 통해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우생학 이데올로기가 죽지 않고

아직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워싱턴의 녀셔널몰을 따라 걷다 21번가에 도착해 북쪽을 바라보면

국립 과학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목에 프랜시스 골턴 동상이 보인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주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조각상 중 하나가

자연의 사다리로 생물의 등급을 매겨 흑인은 인간보다 낮은 종이라 믿게 한 루이 아가시 동상이다.

루이 아가시의 등 뒤쪽으로 거대한 사암 건물에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을 몰살시킬 것을 촉구했던 남자를 기념하는 조던 홀이 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지 못하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여전히 존경받으며

알게 모르게 조용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하니 정말 끔찍한 장면이다.

 

과도한 자기 확신이 불러온 재앙

자신이 모델로 삼으려 했던 존경받는 과학자의 잔인성과 무자비함과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파괴적인 광란의 크기에 토할 것 같다는 저자의 심정에 공감되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는 수천 명의 아우성도

무시하는 악당을 존경할 뻔했다니 아찔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던 호기심 많은 아이가

어떻게 생명들을 기꺼이 말살하는 어른이 되었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모두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자기기만과 단호함을

경계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과유불급, 과도한 자기 확신, 그릿, 자부심은 위험한 혼합물로 광신적인 폭발력을 지닌다.

거기다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자기 자신이 위치한다는 오만함까지 더해질 경우

재앙이 됨을 위대한 박애주의자라 칭송받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긍정적 착각을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

라고 경고한 심리학자들의 말을 기억해야겠다.

미국이 낳은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존경받아온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명성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추적해 나가며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과학은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존경받는 과학자의 숨겨진 추악한 면을 고발하는 르포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툭 내뱉은 고백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지만,

다양한 이유로 소수자들이 약자로서 부당한 취급을 당했던 것에

경종을 울린 저자였기에 갑작스러운 전개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새로운 자신과 사랑을 발견한 저자의 삶에 응원을 보내게 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의 바람은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에요.”_룰루 밀러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 룰루 밀러의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좇아가는 이 책은 어느 순간 독자들을 혼돈의 한복판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관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질문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관계들”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책이 놀라운 영감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물고기는(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우리의 관념을 뒤집어엎으며 자유분방한 여정을 그려나간다.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데이비드 스탄 조던’을 우연히 알게 된 저자는 그가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매혹되어 그의 삶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이 세계에서 “혼돈이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의 시기의 문제”이며, 어느 누구도 이 진리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며, 이윽고 엄청난 충격으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룰루 밀러가 친밀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들려주는 이 책은 과학에 관한 고군분투이자 사랑과 상실, 혼돈에 관한 이야기다. 나아가 신념이 어떻게 우리를 지탱해주며, 동시에 그 신념이 어떻게 유해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 속 의문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나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도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 깊고 더 특별한 인생의 비밀 한 가지와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
룰루 밀러
출판
곰출판
출판일
2021.12.1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