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에 관한 그림책이다.
이사무 노구치는 19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학생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일본으로 돌아갔고,
몇 년 후 어머니는 그와 함께 일본으로 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후였고 그는 엄마와 일본에서 살았다.
그 시절 일본 남성에게 버림받은 미국 여성과 혼혈아가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컬럼비아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했지만,
다빈치 예술 학교의 야간 수업을 듣고 난 후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니,
어떻게 자기 확신이 그렇게 뚜렷할 수 있는지 부러웠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전시회를 보고 감동하여
구겐하임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가면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다니
재능은 타고나는 것인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 껍데기에 갇혀 있던 경계인
속전속결이라 그가 아무런 시련 없이 성공했나 싶었지만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는 평생을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았다.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불렀던 예술가는
미국의 뉴욕과 일본의 무레초 두 군데에 집이 있긴 했으나
자신의 껍질 속에서 살아가며 작품들을 창조했다.
단단한 돌을 '대지의 뼈'라 부르며 돌을 쪼개고 깎았고,
가벼운 충격에도 부서질 만큼 섬세한 도자기도 빚었다.
달팽이집 안에서 그는 아픈 상처들과 기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꼈고,
조각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태풍, 개미, 괴물이라 부를 정도로 맹렬하게 작업했다.
미국 남서부의 메마른 땅과 히로시마의 폐허를 모두 기억하는 그는
그가 속한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에서
모두에게 적이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후 일본인을 향한 미국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그는 스스로 일본인 강제수용소에 들어갔지만 수용소의 일본인들은 그를
미국의 스파이라고 생각했다.
달팽이 껍데기 밖으로 나온 예술가
미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신이 부끄러워 오로지 예술가로만 살았다.
돌을 깎아 조각품을 만들 때만큼은 경계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공원과 정원을 설계하며 그는 서서히 자신을 치유했을 것이다.
이사무가 설계한 파리의 유네스코 평화의 정원은 조각가가 설계한 최초의 정원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가, 뽕나무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접이식 조명 기구 '아카리'를 탄생시켰다.
예술도, 디자인도 넘어, 미국도 일본도 아닌 사랑의 빛으로 가득한 아카리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작품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이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하세요."라는 그의 말과
미국인이긴 하지만 그의 꿈을 늘 좌절시켰던 미국에서
미국 대표로 비엔날레에 참가해달라고 했을 때 미국 대표가 되겠다는 용기를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소년이 상처의 아픔을 간직한 채
달팽이 껍데기 속에서 외톨이로 살았지만,
동심이야말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라며
달팽이 껍데기 밖으로 나와 세상과 소통을 시도했다.
그래서 작은 미끄럼틀 '슬라이드 만트라'를 이사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인지를 잘 알려줄 수 있는 그림책이었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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