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성경 이후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손꼽힐 만큼 세상을 뒤흔들었다.
진입 장벽이 높았던 자연과학 서적과 달리 별다른 수식 없이
쉽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이야기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이야기는 다윈의 의도와 다른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많은 사람을 매혹하고 혼란에 빠트린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이 아니다.
다윈이 지인들의 종용으로 자연선택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는데,
약육강식의 논리에 혹한 사람들이 다윈의 생각을 잘못 해석했다.
많은 생물학자가 애통해하며
“종의 기원을 제발 읽어 보세요.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다윈은 최적자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수많은 자료를 제시했어요.”
라고 호소해도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원작이 심하게 훼손된 스테디셀러의 명성에 생물학자들의 걱정이 쌓여가던 중
다행히 다윈의 계승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인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이다.
그들은 우간다, 콩고, 케냐, 독일,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서
보노보, 침팬지, 늑대, 개 등을 연구하며
생존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친화력(Survival of the Friendliest)’임을 알아냈다.
생존은 친화력이다.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는
인간의 다정한 반려견으로 살아남았다.
늑대는 가축화되지 않았고 개는 가축화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늑대를 의도적으로 가축으로 번식시켜 개가 되었다는 믿음과 달리
개는 ‘스스로’ 가축화되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던 친화력이 좋은 개가
수렵채집인 거주지 근처에서부터 사람들의 배설물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인간과 함께 지내기를 선택했던 좀 더 인간 친화적인 개가
생존에 성공하여 가축화된 것이다.
인간에게 더 쓸모 있는 동물을 인간이 인위 선택하여 번식시켰다면
가축화된 종이 지금보다 더 많을 것이다.
자기가축화는 홀로 살아남은 사람 종인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술 좋은 사냥꾼이던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때문이었다.
우리와 수많은 유사성을 보이는 침팬지는 인지능력은 우수하나,
하나의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함께 행동을 맞추고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거나 물려줄 수 있다.
현존하는 영장류 가운데 우리와 가장 가까운 두 친척
보노보와 침팬지를 통해서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음은 확인된다.
침팬지 수컷은 엄마마저 복종시키지만, 보노보 수컷은 마마보이로 암컷과 친하게 지낸다.
그 결과 보노보 수컷은 침팬지 수컷보다 더 많은 후손을 얻게 된다.
암컷의 다정한 수컷 선호가 다정한 사회의 진화를 일으키는 선택압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자기가축화를 통해 친화력이 강화되면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고 집단 내 타인까지 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난다.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지만, 서로 다름을 발견하는 순간 공격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받으면 인간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내게 된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일 수 있음을
모든 시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무서울 정도였다.
장애, 인종, 종교 등 여러 측면에서 나와 다름에 대한
기피적, 암묵적 차별과 편견이 보복성 비인간화를 불러오는 시대에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에게 비인간화 악순환 해결을 위한 답을 알려준다.
인간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기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넬슨 만델라는 “혐오는 학습되는 것임이 분명하며,
학습을 통해서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도록 배울 수도 있다.
사랑이 그 반대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다양한 국가와 민족, 인종, 성정체성이 섞인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면
사회의 관용은 강화된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것처럼,
서로 다른 배경과 다양한 관점 및 경험을 지닌 사람들과 자유롭게 섞여 생각을 교환해야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음이 자기가축화 가설을 통해 증명되었다.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이다.
다정함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같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현명한 자’ 호모 사피엔스에게 주어진 의무임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 저자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 출판
- 디플롯
- 출판일
-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