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지구상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개척 대륙 남극 탐험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남극 탐험하면 아문센과 스콧의 열띤 경쟁과 성공과 실패의 원인 분석이 떠오르는데
톰 크린이란 인물은 생소해서 궁금했는데 아일랜드인이었다.
1등만 기억하는 시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잊힌 영웅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쟁취하기 위해 뒷받침해 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남극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의 이야기를 펼쳐보았다.
아일랜드 서부 해안의 농가에서 태어난 가난한 청년이었던 톰 크린은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열여섯이 되던 해 영국 해군에 입대하고 어느덧 10년이 흘러 뉴질랜드 항구에 있을 때,
스콧 대장의 남극 탐험 대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배를 떠나는 바람에
톰은 남극 탐험에 함께 하게 된다.
처음에 급조되어 스콧 대장과 함께 했지만, 톰은 능력을 인정받아
스콧이 이끄는 디스커버리호와 케라노바호를 타고 두 차례나 남극 탐험 길에 올랐다.
조랑말을 선택했던 스콧 대장은 남극점을 241km 정도 남겨 두고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할 대원 4명을 선발했고, 톰은 다른 대원들과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했다. 비타민 C 부족으로 괴혈병에 심하게 걸린 대원의 상태가
나빠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썰매에 태워 가다 모두 너무 지치자
톰은 혼자 빙붕을 가로질러 56km를 18시간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톰 덕분에 두 대원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에번스곶에서 겨울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스콧 대장과 대원들을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봄이 되자 톰과 수색대는 꽁꽁 언 스콧 대장과 대원 두 명을 찾아냈다.
영국으로 돌아온 톰은 그의 용기 덕분에 영국 왕실로부터 앨버트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어니스트 섀클턴 대장과 함께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세 번째 남극 탐험을 했다.
불행하게도 인듀어런스호는 얼음이 배 양쪽에 단단히 박혀 침몰했고
대원들은 배를 버리고 구명정을 띄웠다.
꼬박 7일을 노를 저어 빙산 사이로 빠져나와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고,
구조 요청을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사나운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1280km나 떨어진 고래잡이 기지로 도움을 요청하러 가기 위해
섀클턴 대장은 강한 대원 5명을 뽑았고 그 가운데 톰이 있었다.
5명의 대원들은 교대로 배의 키를 잡으며 자신들이 가는 곳이 옳기만을 바라며
2주 넘게 바다를 헤맸고, 드디어 사우스조지아 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고래잡이 기지는 섬 반대편에 있어서 빙하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섀클턴, 프랭크 워슬리, 톰 크린 세 사람은 서로를 밧줄로 연결하고
36시간 만에 사우스조지아 산맥을 넘어 구조 요청에 성공했다.
톰은 선발대가 되어 또 거대한 얼음 장벽을 넘었다.
덕분에 인듀어런스호에 탔던 28명의 대원들도 모두 살아남았다.
세 차례의 파란만장한 남극 탐험이지만,
실패한 탐험이기에 그의 용맹한 영웅적 행동이 쉽게 잊힌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섀클턴 대장이 톰에게 다시 한번 남극 탐험을 하자고 했지만,
톰은 어릴 적 친구인 엘렌 넬 헐리히와 결혼해서 딸 셋을 낳아 기르고 있어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톰과 넬이 운영하던 '사우스 폴 인'이라는 술집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하니,
아일랜드 여행할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 보고 싶다.
고향에서 영웅적인 행동과 모험으로 존경받았지만,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해 싸우고 있던 시절이라
생애 대부분을 영국 해군으로 일했기 때문에 스스로는 남극 탐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는 굳건한 한 사나이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남극 탐험가들의 대부분이 영국의 상류층 출신이라,
남극 탐험 후 책을 출간하고 강연하고 뽐냈지만
아일랜드인인 톰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업적에 비해 유명세가 없긴 하지만, 동료들의 글에서도
충성스럽고 용감하고 강한 체력과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끔찍한 위험과 불가능한 상황을 혼자서 또는 팀원들과 함께 헤쳐냈던
톰 크린의 용기와 끈기를 기념해서
남극 빅토리아랜드의 크린산과 사우스조지아의 크린 빙하 이름이 새겨지게 된 것도
알게 되어 유익하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