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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신생아중환자실 이야기

by biogene 2024. 6. 12.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엄마 배 속에서 나와 집으로 가지 못하는 아기들이 있다. 탄생과 동시에 생사의 경계에 선 아기들은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한다. 신생아중환자실은 병원에서도 매우 특별한 곳이다. 의료진은 하나같이 환자가 아닌 ‘아기’라는 호칭을 쓰며, 병원에서의 엄마 아빠가 되어 아기들을 보호한다. 아기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에 응급 상황마다 의료진의 고뇌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모든 처치를 해서라도 아기를 살리길 바라지만, 이르게 태어난 아기들은 엄지손가락으로 겨우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만큼 작고 연약하기 때문이다. 생의 기적을 목격하는 동시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곳이 신생아중환자실이다. “환자가 죽어도 살아 있어야 하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불면의 밤에 괴로워하면서도 스텔라 황 교수는 어김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아기 가족의 마음을 보듬으며 애도의 여정을 함께한다. 환자의 몸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환자와 가족의 마음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긴 수련을 거쳐 교수가 된 지금도 저자는 여전히 모든 죽음이 힘겹다고 고백한다. 환자의 죽음에 무뎌지지 않고 매번 슬퍼하는 그에게서, 흔들리고, 울고, 차트를 붙들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뜨거운 희망을 본다.
저자
스텔라 황
출판
동양북스
출판일
2024.05.30

 

어느 죽음이건 애통하겠지만 생을 펼쳐보지도 못한

작고 여린 신생아의 죽음은 더 비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환자를 환자라 부르지 않는 유일한 병동이 신생아 중환자실이다.

병원에서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간호사도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이다.

어미 새가 아기 새를 보호하듯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의사조차 간호사의 허락 없이는 아기를 만지거나 검진을 시도할 수도 없다.

 

어른의 경우에는 자신의 선택 또는 치료 거부로 질병을 얻거나 낫지 않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소아과에서는 환자의 잘못으로 아프게 되거나 낫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태어나서, 부모의 잘못으로, 사회의 부족함으로

아픈 아기와 아이들이 대다수라서 질병과 싸우는 무력한 아기들을 곁에서 지켜주고 싶어서

소아과를 선택했다는 스텔라 황 교수가 전하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는

건강한 아기의 탄생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건강하게 태어난 자체가 큰 축복이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지척에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서,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단지 불운이 따라서 아픈 아기를 구하고,

심히 아픈 아기는 편안하게 보내주고 가족들을 안아주면서

황 교수는 생과 사는 앞뒤 가리고 오지 않음을 늘 체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지금 이 순간을 살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

"타인의 기쁨에 기뻐하고, 타인의 아픔에 아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이끄는 최고의 지도자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의료진이 공감하고 적절한 완화치료를 하는 것이

세상 마지막 길을 축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감이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만, 지나친 공감은 공감 피로를 가져와

우울증을 불러와 번아웃의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자기 돌봄을 실천하는 모의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 피로를 치유해야만 한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어야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에서

좋은 의사와 보통 의사가 결정됨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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