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을 낳은 여자의 이야기, 별다른 정보 없이 표지 그림을 보고 생리혈을 상징하나 싶었는데
인간으로 탄생하지 못하고 운명을 다한 태아의 이야기와 식물인간에 관한
존엄사와 존엄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혼모 여성의 낙태와 비정규직 30대 여성과 무력한 어머니에게 부가된 절대적 돌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인간도 식물처럼 사람이라는 토양 속에 발아하여
뿌리내리고 살 수밖에 없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수분과 자양분이 되어야 살 수 있다는
뿌리내림과 얾힘에 관한 이야기라는 박주영 판사의 소개대로
존엄사가 중요하듯 존엄생 또한 중요함을 일깨우는 소설이었다.
손가락에 살이 쪄서 ㅗ와 ㅏ 두 칸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솔아'를 늘 'ㅅㅏㄹ아'라고 오타를 내던
박 대리의 문자가 미혼의 스물다섯 살 솔아 씨가 한 사람을 살렸다.
늘 보던 오타에도 위로받을 수 있던 솔아 씨와 그런 솔아 씨를 보여
자신이 낳았던 강낭콩을 떠올리며 낙태가 아닌 유산을 한 것이라고 여기고
살아갔던 어머니들의 역사와 낙태라는 비밀을 공유한 공동체에 대해 되뇌게 되는
지연 씨의 모습은 씁쓸했다.
고작 십 주도 못 품은 강낭콩을, 점조차도 못 되는 티끌인 자신의 강낭콩을
법적으로 태아가 될 수도 없고 시신으로 여겨지지도 않아
의료 폐기물로 사라졌을 자신의 강낭콩을 지연 씨는 또 다른 솔아 씨를 만날 때마다
불쑥 불쑥 생각할 것이다.
7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는 미선 씨와 딸 지영 씨의
이야기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집안에서 장기 병간호를 하다 보면
가족은 해체되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더 슬펐다.
산다는 것은 늘 돌봄의 연속이지만, 돌봄을 받기만 하고 되돌려줄 수 없는 삶이
과연 살아 있는 것일지, 자신을 소모하며 무작정 돌봄을 주기만 하는 이의 삶 또한
살아 있는 것인지를 묻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안 아프고 늙어가면 좋겠지만, 진석처럼 불의의 사고로 다치지 않더라도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누구나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진석이 사 왔던 몬스테라 화분에 다 죽은 주제에 뿌리가 어찌나 철썩 달라붙어 있는지,
그 악착스러움에 놀랐는지, 어떻게든 식물의 생을 끊으려 드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자신의 불행을 모두 진석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자신에 대한 미움 때문인지
울분을 토해내는 지영의 모습이 안쓰럽고 슬프게도 공감되었다.
아빠를 그만 포기하자고 엄마에게 말하고, 같은 마음을 들킬까 봐 그 말을 막는
모녀의 처절함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모든 실패를 아빠의 탓으로 돌리는 자신의 혐오스러움에 울부짖는 딸의 아픔과
그 상처를 지켜봐야 하는 엄마의 무너져내리는 마음과 상처가 느껴졌다.
연명치료 거부서를 신청하며 생명의 존엄성도 중요하다며
죄책감을 옅게 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돌봄 노동과 인간의 생명성에 관한 해결하기 힘든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